기억의 흔적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도 세상은 여전히 밤의 세계에 있었다. 주변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그녀의 방이었지만, 그녀의 침대 옆 작은 구멍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녀는 구멍안으로 손가락을 넣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저 벽일 뿐 손가락은 들어가지 않았다. 수건에 물을 묻혀 닦아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구멍안에서 여전히 바람은 부는...

이혜윤은 다시 힘겹게 말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녀의 말투와는 다르게 평소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성수는 그녀의 표정이 오랜 시간 반복에 의해 훈련된 표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현재 두려워했던 기억을 떠올렸음에도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정말 한동안은 방안에서 나가지 않았어요. 방 안에 있다고 해서 달라지...

이성수와 이도현이 레스토랑에 도착할 때쯤 마지막 손님처럼 보이는 커플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은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얘기를 나누며 지나갔다. 이성수는 지나가는 커플들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과거의 자신은 이 시기때쯤 한 여자와 연애를 했었다. 오랜 동창의 소개로 만난 여자였는데, 첫눈에 서로가 호감을 느꼈지만 속마음을 고백하는 것을 어려...

이른 새벽 그녀는 불현듯 눈을 뜨게 되었다. 주변은 아직 깊은 밤에 빠진 채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핸드폰을 겨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4시 40분. 이성수는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스탠드를 켜고 냉장고로 향했다. 찻장에서 언더락잔을 꺼내 얼음을 담고 싱글몰트 위스키를 조금 따랐다. 잔을 휘휘저으며 한모금 마시고 창밖을 보았다....

이혜윤은 자신이 할 일은 하면서 힐긋힐긋 오경수와 이성수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들도 그녀의 시선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에 대해서 정확한 문제점을 꼬집을 수 없었다. 단지 자신들이 먹은 음식을 치우는 타이밍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경수는 창문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은 가게가 주택단지에 있다는 점과, 늦은 시각이 아님에...

오랜만에 만난 오경수는 외형뿐 아니라 성격까지 변한 듯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았던 그가 사사로운 것들 까지 공유하고 대화하려고 했다. 이성수는 그것이 자신에게 필시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왠지 그런 대화들이 그녀 역시 싫지 않았다. 오경수가 떠나고 나서 처음 찾는 카페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달라진 저을 ...

회색 분위기의 벽에 걸려있는 달력은 이미 계절은 봄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아직도 겨울속에 있는 듯 나뭇잎 없는 나뭇가지는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도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해 그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텅 빈 벤치를...

그녀는 이도현의 말중에 유독 진실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처음 자신이 삶이 환생이란 것이라고 확정 지었을 때 부터 '진실'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녀가 처음 생각해 낸 것은 서른살 겪었던 사고로 자신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고, 지금 살고 있는 삶은 모두 자신의 뇌가 만들어 낸 꿈 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

그녀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노트북 화면엔 빈 하얀 화면이 보였고, 그 위로 검은색 커서만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몇시간 째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많은 고민 끝에 이도현과 오경수에게 자신의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정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딱히 숨기려고 숨긴 것은 아...

이튿날, 그녀는 아침 일찍 집 아래에 1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을 찾아갔다.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렸을 때,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글을 봤던 게 기억이 났다. 그녀가 편의점에 찾아갔을 때 다행히도 점주가 근무하고 있어서 아르바이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점주는 아르바이트가 구해지지 않아서 그녀가 문의했을 때 별다른...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오랜만에 출근 시간도 신경 쓰지 않고, 불안감과 초조함이 없는 덕분에 오랜 시간 잠을 잘 수 있었다. 시간은 11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고 화면 중간에 메시지 알림을 확인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를 꺼내어 한잔 마셨다. 그리고는 식탁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

그녀의 손에는 5번째 생맥주잔이 들려져 있었다. 그녀가 처음 바에 들어온 이후 시간이 꽤 지났지만, 바의 결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몰랐다. 술에 취하거나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메꿨다. 덕분에 바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녀가 왔을 때 봤던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이...